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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이상한 나날 중에 만난, 앨리스

by 길 위에 있다 2009. 11. 27.



친구가 놀러 와서 내내 놀다가 친구를 바래다주고는 산책을 갔는데
날씨도 꾸리꾸리하고, 12월이 코 앞인 주제에 별로 춥지도 않아 가을 점퍼를 입고 한강에 나간
이상한 날이었는데
양화대교 정도까지만 사뿐하게 자전거로 달려주고
한강 선착장에서 간식을 즐기고 돌아오려고 했는데
'에이, 간만에 좀 달려볼까' 싶어서 몸을 추스르고 달리려고 했는데




앨리스를 만났네. 
시베리안 허스키, 이제 두 달 반 된 족보있는 가문의 아가씨. 
어찌나 폴짝폴짝 뛰어다니던지, 너무너무너무 귀여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는 이런 때에 쓰이는 이야기이군, 싶었다.
선착장에 내려가서, 바로 물 앞에서 놀다가 사라질 때는 내가 마침 통화 중이라 못 찍어서 아쉬웠는데
내가 자전거 타고 막 출발하려고 하니 주인과 함께 팔짝팔짝 잔디밭에서 뛰면서 놀고 있더군. 


 

 

앨리스에게 두근두근 다가가서

"아저씨, 이 강아지 시베리안 허스키에요?"
"진짜진짜 귀여워요~!!!!"
"아저씨, 얘네 엄마는요?"
"아저씨, 얘는 몇 살이에요?"
"아저씨, 얘 사진 찍어도 돼요?" (혹시, 아저씨가 아니었나? 미안, 아저씨.)
라고 막 물어보고, 사진 찍었더니 아저씨가 "언니한테 웃어봐, 웃어봐." 하면서 포즈도 취하게 하고, 앨리스라고 부르면 달려가니까 불러보라고 하고 암튼 도움을 주었지만, 앨리스는 도도할뿐만 아니라, 막 세상 밖으로 나와 온갖 것이 신기하고 재미나서 환장할 것 같은 귀족 아가씨 같은터라 혼자 깡총대며 놀기 바빴지. 그래도 핸드폰을 들이대니까 아저씨 다리 밑에 숨어서 안 나오고 하더만. 부끄러웠나보다.

정말 정말 정말, 귀여운거라. 

 
 



 



나는 이상한 망원동의 앨리스, 강바람이 좋더라구요~!


신나게 앨리스랑 놀고, 난 고양 난지지구로 갔는데, 거기가 엄청 공사중이라 걱정했건만 거의 끝난 것 같았는데, 좀 놀란 게, 난지공원 쪽이 자전거 도로가 엄청 잘 되어 있는 건 둘째 치고, 여기가 예전에도 이랬나 싶을 정도로 강가에 흙을 덮어 놓고 돌을 살짝 깔아 놔서, 살짝 바다나 강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건데, 물론, 아스팔트를 없애고 이런다고 옛날 옛적 한강으로 돌아가는 건 아닐 것이고, 내 생각에는 저 흙바닥 아래는 아직 아스팔트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참 예쁘기는 하더라.

한강르네상스인가 뭐시기인가가 한강을 친환경적으로 꾸민다는 것이라든데 어떻게 삽질을 하고 어떻게 망치질을 하면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겠고, 내가 오늘 달린 길이 그 르네상스와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되어 있긴 했다.
원래 그 쪽에 다듬지 않은 습지인가 숲이 있었는데 그 안에 산책로를 만들고 나무 다리를 만들고. 뭐.... 예쁜 공원을 만들어놨다. 그래, 예뻤다. 
하지만 한강 둔치의 잘 꾸며진 예쁜 공원보다, 물이 찰랑찰랑 넘치는 투박한 강가가 더 예쁘다.

예전 내 기억에 억새와 풀만 가득했던 고양난지지구로 가면서, 아, 거기 공사중이면 어쩌지, 거기도 예쁜 공원을 만들어 놨으면 어쩌지 좀 걱정했는데, 아직 다행히도, 거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스산했다. 좋다.



강가에서 한갓지게 놀다가 문득 돌아봤더니 내 자전거가 예쁘게 서 있었다. 
이름을 붙여주고 싶은데. 앨리스라고 할까보다.
내 방에 딱 하나 살아 남은 화분, 이름도 모르고 키우는 풀에 붙여주려고 했는데.

앨리스, 
좋네.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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