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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편지 필승아,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 있다. 그리고 맹열(猛熱)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달리 도리를 차리지 않으면 이 몸을 다시는 일으키기 어렵겠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필승아, 내가 돈 백 원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또다시 탐정 소설을 번역해 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두어 권 보내 주기 .. 2020. 6. 23.
제목을 없앴다 원래, '옛날이야기'가 제목이었는데, 이 제목을 검색한 유입수가 대박 많아짐. 제목, 버림. 엄마-엄마는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태어났다. 위로 다섯 명의 언니오빠가 태어나자마자 죽고, 엄마가 첫째가 되었다. 엄마 밑으로 줄줄이 또 다섯 명의 동생들이 태어났다. -예전부터 "어려서부터 밥을 하고 도시락을 싸야 했어, 난."이라고 엄마한테 구시렁거리면 "난 일곱 살 때 떡을 했어."라고 엄마는 말했다. -작년에, '떡을 한 딸'과 '밥을 한 딸'의 맥락이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간식거리가 궁했던 엄마는 동생들을 달달볶아 떡을 했다. 쌀이 귀했던 시절이었다. 일곱 식구가 다 처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떡이 많아서 외할머니는 이웃에 뜬금없이 떡을 돌려야 했다. - '떡을 한 딸'은 엄마에게 맞았고, .. 2016. 2. 17.
울컥, 한다. 할 줄 안다. 개정 전의 중1 교과서를 할 때에는 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직 개정하지 않은 고1 교과서에서는 박완서의 , 만득이와 곱단이의 이별 장면에서, 만득이의 마지막 하소연에서 오늘 수업한 윤흥길의 에서는 외할머니가 구렁이를 달래는 장면에서, 그렇게 저승길로 삼촌을 인도하는 장면에서, 울컥한다. 수업하다가도, 어쩌냐, 감동적이거나, 울컥해서, 글을 읽다가 목이 멘다. 그래서 그 글들을 수업할 때는 각별하게 조심한다. 그리고 지금, 그 울컥함의 지존을 보여주는 다른 글의 문제를 내고 있다.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 2010. 6. 10.
[퍼옴]강, 리모델링? [시사인 퍼옴 2010.06.07] “4대강 리모델링, 농민들 땡잡았습니다?” 강의 이 참상을 표현할 언어는 없었다. 하여, 강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은 상식도, 법도, 순리도 거스른 이 패륜을 고발하기 위해 하늘을 날기로 했다. 낙동강지키기 부산시민운동본부는 4대강 사업으로 도륙되는 낙동강 일대를 항공 촬영해 그 사진들을 공개했다. 보라, 어떠한가. ⓒ낙동강지키기 부산시민운동본부 제공 낙동강과 그 지류인 금호강(가운데)·진전천(오른쪽)이 합수되는 지점. 4대강 공사로 본류는 오탁수로 변했다. 외지고 한적한 강촌마을 경북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 한 팔십 노인은 웅얼거렸다. "왜란도 피하고 6·25도 비켜갔는데 4대강은 못 피하네…." 마을 한복판을 줄지어 지나는 트럭 행렬로 경운기 한대가 갈 바를 몰라 멈춰.. 2010.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