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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고별 촬영

by 길 위에 있다 2009. 11. 28.


내년 2월이면 꼬박 3년을 채웠겠지만, 이래저래 해서 그걸 못 채우고 학원을 그만두면서
고별 촬영.

내가 우리 학원을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건, 주변인들에게 여러 번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기도 했는데
아주 단순하게 풍경 때문이었다.
월급이 많다던지, 복지가 좋다던지, 아이들이 아주 착하다던지, 공부를 잘 한다던지 이런 저런 여러 가지 것들이 물론, 괜찮은 점도 분명 있었지만, 학원을 그만 두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건

학원을 그만두면 그 동네 갈 일이 없을테고,
그러면 오고 가면서 본 풍경들,
교무실 내 자리에서 보는 풍경도
학원과 함께 사라질테니, 서글펐다.

그래서 고별 촬영.

 
내 자리. 수학 선생님의 등이 조금 보이네.
약간 난장판.













그러니까,
지리산 갔다 온 뒤로는 저렇게 바탕 화면에 지리산 풍경이 있었고, 난 시험 대비 안 하지만 직전보충 시간표가 있었고, 그 옆에는 지리산길 지도가 작게 붙어있었고, 모니터 뒤에는 가려서 안 보이지만 외워두려고 적어둔 아랍어가 포스트잇에 붙어있었고.




'친애합니다, 국란샘'이라는 말도 안 되는 문구라던지, 우주가 끝날 때까지 날 사랑하겠다는 아부성 발언으로 점철된, 국란에게 바치는 우유. 왼쪽에 수학샘에게 바쳤던 노란색 그림이 보인다. 그 그림 속 문구는 사뭇 무서웠는데, 바나나 우유를 그려놓고 '수학샘 맛 우유'라고 적어놨다, 애들이.

모든 선생님들이 볼 때마다 섬뜩해 했는데.





3학년 영어샘이 준 곰돌이.
스승의 날 때 받았던 장미.
모두, 두고 와 버렸는데, 이제 와서 좀 아깝네.
장미는 꽃잎을 떼면 비누로 쓸 수 있는 거였고, 곰돌이는 내 스탈이었다. 왜냐하면...









얘는 늘, 나를 도발했으니까.

한 마디로, 싸구려 곰돌이라서 늘 자세가 어정쩡하게 안 잡혀 있었고, 녀석의 다리는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곤 했다. 그럼, 난 기분이 나쁠 때면 곰돌이에게 시비를 걸었다.

한 번 해보자는 거냐?

그리고 곰돌이를 때렸다.





그리고 내 자리에서 오른쪽으로 몸을 틀면










창문 밖으로 하늘이 보였다. 그날 날씨가 꾸져서 저딴 사진이 나왔지만, 날씨가 좋을 때면
난 환장할 정도였다.









이렇게 베란다? 발코니?
아무튼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어서
날씨가 좋으면 밖에 나가서 바람도 쐬고, 산도 보고. 딱 하나 공식적인 흡연자였던 사회 선생님이 나가서 담배도 피우고. 아, 그거 꼭 하고 그만두고 싶었는데.

겨울에는 저 문 때문에 정말 정말 교무실이 추웠지만, 늘 담요가 세 개씩 있던 나는 참을만했다.





이런 풍경이 한 가득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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