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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수의 성좌, '결말'의 중요성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식은 좋아하지 않는다. 과정이 명쾌하고, 정의롭고, 훌륭하고 기타등등 납득이 가야, 그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결말은 더 빛이 난다. 만화책 하나 갖고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 건, 이 만화의 초반은 정말 재미있고, 기발하고, 적어도 나에게는 깊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취향에 아주 딱 맞았다는 것은 제쳐두고라도. 뭐냐. 범우주적인 사색이라도 한 것이냐. 재미있게 읽다가, 14권 완결인 책이 10권이 넘어서도 갈피를 못잡더니, 완결편이 엉망이라는 얘기는 익히 들었어도, 그런 예상치 못한 장면에는 과정이건, 끝이건 다 필요없고 순도 100%의 분노만 들끓더군. 바보 같은 작가. 초반에는 열렬히 감탄하며 읽었다는 것을 알아주라. 그런데, 결국, 완결편을 읽고, 책을 탁 덮으며 외치.. 2009. 12. 24.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1987년) 영화(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들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1. 서늘한 시다. 어렸을 때는 그냥 인상적이었고, 약간 충격이었고, 하지만 대충 읽었던 듯하지만. '뭔 새가 날아간다고.. 애국가는 뭘 어쨌다고...'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 2009. 11. 5.
낡은 집 낡은 집 - 이용악 날로 밤으로/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은동곳도 산호 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찻길이 놓이기 전/노루 멧돼지 쪽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아들은/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송아지래두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차가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 보냈다는 그 날 밤 저릎 등이 시름시름 타 들어가고/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 2009. 10.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