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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강, 리모델링?

by 길 위에 있다 2010. 6. 7.

[시사인 퍼옴 2010.06.07]

“4대강 리모델링, 농민들 땡잡았습니다?”


강의 이 참상을 표현할 언어는 없었다. 하여, 강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은 상식도, 법도, 순리도 거스른 이 패륜을 고발하기 위해 하늘을 날기로 했다. 낙동강지키기 부산시민운동본부는 4대강 사업으로 도륙되는 낙동강 일대를 항공 촬영해 그 사진들을 공개했다. 보라, 어떠한가.



ⓒ낙동강지키기 부산시민운동본부 제공 낙동강과 그 지류인 금호강(가운데)·진전천(오른쪽)이 합수되는 지점. 4대강 공사로 본류는 오탁수로 변했다.


외지고 한적한 강촌마을 경북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 한 팔십 노인은 웅얼거렸다. "왜란도 피하고 6·25도 비켜갔는데 4대강은 못 피하네…." 마을 한복판을 줄지어 지나는 트럭 행렬로 경운기 한대가 갈 바를 몰라 멈춰서 있다. 농부는 화를 내지 않았다. 우망리는 그 이름처럼 걱정이 없고 분노가 없는 곳이었다. 마을 꼭대기 전망 좋은 곳에 우사가 있고, 그 맞은편 솔숲에는 수백 마리 백로 떼가 앉아 쉬는 그야말로 자연이 대접받는 곳이다. 100여 가구가 사는 이 마을 사람들은 하루 농사일이 끝나면 강가에서 망둥어며 두치며 송어 밤낚시를 즐겼다. 하지만… 마을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은 흙탕물로 변했고 시커먼 준설토가 논밭을 뒤덮었다. 마을회관 높이만큼.



강은 파헤쳐졌고 농지는 공중부양했다
ⓒ시사IN 조남진 단감 수확이 한창인 농민들 너머로 ㄷ자 모양의 함안보 공사가 한창이다.


4대강 사업은 수만 년 세월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제 겨우 낙동강과 잘 지내보려던 참이었다. 낙동강 하구의 삼락·염막 지구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시도했다. 강가를 따라 밭농사는 비닐하우스도 치지 않고 저농약 유기농만 했고, 벼농사를 짓는 농부는 수확하고 난 뒤 볏단과 낟알을 부러 흩어놓았다. 철새들이 와서 먹으라고. 새똥은 또 거름으로 쓰였다. 그렇게 어렵사리 민·관이 약속해 친환경 농업이 자리를 잡아가던 차였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 "하늘을 두고 농민과 한 약속" "너 죽고 나 죽자" 살벌한 글귀가 적힌 붉은 피켓들이 논바닥에 꽂혀 있었다.


리모델링. 좋은 말이다. "아파트 리모델링하면 더 좋아진다는 거잖아요. 농민들, 땡잡았습니다." 경남 밀양시 상남면에서 만난 농어촌공사의 한 공무원은 4대강 사업과 연계해 이뤄지는 농지 리모델링에 대해 이처럼 명쾌하게 설명했다. 4대강 공사로 농경지 침수 우려가 나오자, 또 무엇보다도 하천 준설토 처리를 위해 고안해낸 게 농지 리모델링 사업이었다. 강은 파헤쳐졌고 농지는 (오염된) 퇴적토가 쌓여 3~ 4m 높이로 '공중부양' 했다.

경남 함안군 칠북면 덕남리 함안보 공사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지르면 임자고 멈칫하면 바보다. 주민도 정부도 막 싸지른다." 막다른 길에 이른 4대강 사업. 주민은 보상을, 정부는 속도전으로 맞불을 놓으며 '전광석화'처럼 달려가는 형국이다.





ⓒ시사IN 조남진 함안군 칠북면 덕남리의 농지 일대는 인근에서 퍼낸 준설토가 쌓여 전봇대마저 잠겼다.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에도 이제 곧 포클레인과 트럭이 들이닥칠 것이다. 얼마 전 깃발이 꽂혔다. 4대강 공사 표식이다. 여론의 눈치를 보던 정부도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비경을 자랑하는 부용대 앞 모래사장에도, 자연이 병풍처럼 둘러친 듯한
병산서원 앞에도 곳곳에 빨간 깃발이 눈에 띄었다. 구불구불한 강 주변은 반듯하게 깎일 것이고 모래톱에서 파낸 모래는 또 어디론가 보내지겠지.






ⓒ시사IN 조남진 병산서원 앞 모래톱에 아이들이 소풍을 왔다. 공사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빨간 깃발'이 꽂혀 있다.



5월26일 오후. 취재진이 부산을 시작으로 밀양·함안·구미·상주를 거쳐
안동 하회마을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 수십명이 강가에서 깔깔 거리며 놀고 있었다. 경북 상주의 한 유치원에서 수녀 선생님의 인솔에 따라 '문화재 탐방'을 왔단다. 인터뷰를 위해 다가간 기자에게 이 수녀는 외려 물었다. "4대강 공사를 하면 이곳이 '유원지'가 될 텐데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까요? 이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하는데…."






ⓒ시사IN 조남진 구미의 해평습지(위)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4대강 사업으로 흔적이 거의 사라졌다.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제공 낙동강 구미지구의 일선교 하류 준설 현장.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이 처참하다.

박형숙 기자 /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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