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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by 길 위에 있다 2010. 2. 16.


연휴 내내 먹고 자느라 소가 되기 일보직전에 컴백홈했고
일을 하겠다는 가열찬 계획은 스파이더 게임에 홀릭하느라 날려버리고
미친 년, 미친 년, 혼잣말하면서 아침 여섯 시에 침대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꿈.



어디인가를 갔다가 집에 돌아왔나. 내 방의 침대가 지저분한 것에서 뭔가 의심쩍은 면을 발견. 화장대 위에 귀걸이 고리가 엎어져 있는데서, 뭔가가 침입했다는 물적 증거 발견.
'이상해, 이상해.' 약간 겁먹음.
사무실 방을 보니 창문이 열려 있고, 그 앞의 컴퓨터 책상이 지저분한 걸로 뒤덮여 있음. 드디어 확신.
'도둑이다!' 

욕실에서 우당탕 소리가 나서 뭔가 침입자를 격퇴할만한 물건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욕실문을 열다. 

 세탁기가 엎어지면서, 어떻게 가능한지 세탁물이 쏟아져 나와 있고, 역시나 어떻게 가능한지 영화 속 여주인공이 거품 목욕할 때나 나올 법한 거품들이 욕실 바닥에 하나 가득. 그 거품들 속에서 쓰러진 사람 발견.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몸을 돌려보니(이제와 생각해보니, 아마도 뒷 모습만으로도 누구인지 알 수 있어서 몸을 돌릴 용기를 얻었겠다 싶은데) 동생이다.

OOO! 이름을 부른다. 늘 그랬듯, 성을 붙여서 "성OO!!" 이름을 부른다.
너무도 태연하게, '이 자식, 또 술 처먹고 이 난리야.' 하다가, 내가 불러도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넋빠져 있는 녀석을 보다가 '이 자식, 어디서 약 같은 거 한 거 아니야.... 젠장할' 하다가, 꿈 속에서도 되게 오랜만에 봤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좀 반갑기도 하고, 좀 안도하기도 한 것 같은 감정을 느꼈던 듯.

녀석을 흔들어 깨우는데, 사무실 방에서 우당탕 소리가 또 들린다.
저건 또 뭐야, 동생을 냅두고 후닥닥 방으로 달려갔는데, 어떤 녀석이 창을 넘어 들어오고 있다. 기껏해야 열 대여섯 밖에 안 되어 보이는 놈. 막 한 쪽 발을 책상 위에 올려 놓은 참이다.
"야, 너 뭐야! 저게 미쳤나! 죽고 싶어!" 욕을 하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치니 놈은 당황한다. 
놈을 쫓을 만한, 정확하게는 공격할만한 물건을 찾다가 지난 번 학원에서 들고 나온 매가 떠오른다. 냉장고 뒤에 꽂아 두었던 매를 들고 놈에게 휘두른다. 그런데 그 매는 짧다. 놈에게 닿지 않는다. 놈은 화가 나서 얼굴이 점점 벌개진다. 녀석이 나를 노려보다가 "저게..." 하면서 돌아서 나가려는 폼을 바꿔서 다시 들어오려고 한다. 그런데 방충망이 잘 안 찢어져서인지 몸이 걸려서 제대로 들어오지 못한다.
그 틈에 나는 획 몸을 돌려서 욕실로 가려고 한다. 가서 동생을 깨우려고 한다. 같이 침입자를 쫓아내려고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방 문의 경칩인지, 나무가 깨진 부분인지에 옷이 껴 버린다. 쉽게 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황해서 잘 빠지지 않는다. 녀석은 날 노려보면서 계속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쓴다. 나는 옷을 빼려고 애 쓴다. 그리고 계속 동생을 부른다. 
"성OO!!" 
"성OO!!" 
그런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소리를 크게 쳐야 욕실에 있는 동생이 들을텐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있는 힘껏 소리를 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답답했다.

욕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다가 꿈에서 깼다. 깨면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래봤자, 이를 갈듯이, 소리를 밖으로 크게 내지 않고 부르는 식이다, 보통 그러지 않나, 꿈에서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자는데, 이불 속에서 한쪽 팔로 인형을 꼭 잡고 힘주면서 이름을 불렀던 것 같다.
이왕 깬 김에, 열 시 즈음 됐으면 움직여볼까 싶어서 시계를 보니 여덟 시가 채 안 됐다. 도로 잤다. 깬 직후에는 침입자의 얼굴이 똑똑히 기억나서, 만약 길에서 그런 비슷한 놈을 만나면 한 대 쳐 줄 수 있을 듯 했는데, 다 까먹었다.

아마도 아침이니, 옆 집, 앞 집, 아랫 집, 윗 집 사람들은 출근 준비, 밥 준비로 덜거덕 거렸겠지만,
그 아침에 나는 다시 잠이 들면서
덜거덕, 쿵쿵 소리에 살짝 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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