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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20110801 충북 옥천2 - 집

by 길 위에 있다 2011. 8. 17.




자다 깨고 자다 깨고 책 좀 보다가 다시 잠이 들고 아점을 해 먹고 씻고 청소를 하고. 그러고 나니 오후 세 시였다.
밖에도 나가지 않고 방에 콕 박혀 빈둥대다보니, 청소를 막 끝낸 집에 정까지 드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 뭐, 이사 안 가고 있을만 한 것 같네.


1. 집

저, 청소와 유흥의 흔적

처음 이 집을 구할 때, 아가씨 혼자라는 말에 주인 아저씨(그러니까 나중에 결국 잠수를 탔던 숙소 주인)는 할머니 쓰시는 옆 방을 쓰라고 했다. 나름 배려였을 게다. 그런데 그 집은 '바로' 옆 집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민박집을 발견하자마자, '저 방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던 그 방이었다. 탁 트인 호수를 바라볼 수 있게 커다란 창을 가진 숙소이지만, 내가 속으로 내심 거절 의사를 밝혔던 그 방은 창문 앞에 커다란 굴삭기인지 뭔지가 딱 자리잡고 있었던 게다. 하지만 역시, '3만원'이라는 방값이 문제였다. 다른 방은 더 비싸지 않을까, 라는 소심한 의문 때문에 방을 바꾸어 달란 말을 못하고 말았다. 뭐, 결국 이틀 동안 굴삭기를 바라보며, 멍멍이 소리를 벗하며 지냈다.
참 궁금했던 건 멍멍이들의 정체였다. 철망이 달려 있는 개집이 일렬로 4~5개 정도가 있고, 그 속에 멍멍이들이 있었다. 주인 멍멍이가  없는 집도 있었지만, 대개는 있었던 듯. 사실 좀 무서워서 자세히는 못 봤다. 내가 창문 근처에만 가도, 그리고 좀 멍멍이를 보려고 해도 너무 무섭게 컹컹거렸다.
처음에는, 혹시, 곧 운명을 달리할 멍멍이들일까, 싶었는데 그 길쭉한 다리이며, 날씬하다 못해 마르기까지 한 그 몸매, 게다가 매서운 눈매. 흡사 '카메라 출동'에나 나올 법한 투견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계속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다, '멍멍이를 풀어주고 야반도주를 할 것인가!' 잠깐 호기롭게 생각하다, 말았다. 아, 정말, 가까이 가기에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가장 오른쪽 빨간 지붕이 전망 좋은 방, 가운데 주인집, 왼쪽 굴삭기 뒤에 내 방

숙소에서 안터마을의 버스 정류장까지 대략 15분. 안터마을은 반딧불이 축제가 유명하다(반딧불이, 밤에 나가면 볼 수 있을까 했지만 못나갔다. 무서웠다. 너무 깜깜했다.) 했고, 버스 정류장 근처에 안터선사 마을이라는 것도 있다고 했고, 뭔지 잘 모르지만 버스 정류장 옆에 세워 둔 천막 같은 것도 궁금했다.

잠시 내리던 비가 그쳤다. 담배도 살 겸, 산책을 나왔다. 아, 이런 곳이었구나.  
대청호 어디 즈음이라는 것 같던데,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휴가철은 휴가철이구나 알려 주는 건, 가끔 머리 위에 보트를 실어 가는 차를 만난 정도. 하긴, 보트가 물 위를 달리는 소리가 무섭게 나기는 하더라. 그래, 너희들은 정말, 놀러왔구나. 나도 놀러 왔다.


안터마을 가는 길. 산, 구름, 호수

터벅터벅 안터마을로 가는 길. 비가 내린 직후라 흙냄새도 나고, 멀리 산에는 몽글몽글 구름들이 얹혀 있다. 물은 잔잔하고 새도 날고. 좋네.
가게에서 담배 하나를 사고, 선사마을을 물었다. 아, 고인돌요? 쪼오기에 있어요. 
그래, 선사'마을'은 고인돌 두 개를 모아 놓은 곳이었다. 이것저것 팻말로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지만, 난 고고학자도 아니고, 안타깝게도 고인돌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궁금해했던 버스 정류장 옆의 천막 두 동은, 몽골 유목민들의 천막을 재현한 거라고 하셨나. 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옥천의 안터마을과 몽골의 관계는 무엇일까. 선사마을을 둘러 보고, 그래도 천막 안에 들어가 볼까 하는 찰나,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옥천읍 가는 버스를 보았다. 아주 잠깐 고민하고는 냅다 버스를 탔다. 안터마을에 돌아오는 막차는 한 시간 반 뒤.
목적지는 pc방. 여행지의 pc방 순례는 절대 아니며, 단지, 새로운 숙소를 찾아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이미 숙소에서 옥천 지도를 꺼내 놓고, '높은 벌'과 가까운 곳의 숙소를 뒤져 가고 있었던 때라, 그냥 다시 옥천 군청 홈페이지에서 구체적으로 숙소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로 한 것. 역시, 집요하지 않은가. 피시방에서는, 검색을 하고도 버스 시간이 남길래 '나는 가수다'에 나온 자우림의 공연까지 챙겨 보았다. 옥천읍에서 돌아오는 길, 어느새 해도 산 뒤로 꾸물꾸물 넘어가고 있었다.


 

새다!

안터 선사마을





2. 이사


새벽같은가? 저녁임.

사실, 이 정도의 적막함은 처음인 것 같다.
텔레비전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되는 곳. 아니, 이런 곳이 있어도 하루 이상 묵은 적은 없었다. 아마, 그게 좀 당황스러웠던 듯 하다.
하루 잘 곳을 찾고, 다음 날이면 행장을 꾸려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그래서 늘 애잔한 눈빛으로 '저 혼자 왔구요, 내일 일찍 나갈 건데요...'라며 방값을 깎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틀.
인터넷이야 당연히 기대도 안 했지만, 가져간 노트북의 무선이 잡히는 것을 보고, 다른 민박집 검색을 위해 열심히 인터넷 연결을 시도했다. 라디오가 듣고 싶단 생각에, 엠피쓰리의 라디오 수신을 시도하고, 마침 DMB 보는 방법을 배워 간 게 생각 나 핸드폰으로 방송국 수신을 시도하다 포기했다. 그리고 결국 노트북에 있는 노래들을 틀어 놓고 책을 읽었다.
그러니까 소리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노래들을 틀어 놓아야 할 때도 있지만, 라디오를 틀어 놓아야 할 때가 있다. '시간'대별로 정해진 프로그램,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그 시간대에 속해 있단 느낌이 들어야 안정감이 들 때가 있다.
낯선 곳에서 안정감을 찾고, 익숙한 시간대에 놓이고 싶은 게 웬 말도 안 되는 욕심인가 싶었지만 결국, '딱 있고 싶은 집'에 있고 싶은 욕심이었던 게다. 이러쿵저러쿵 핑계를 대 봤자다. 

다음 날, 적어도 파리가 빠져 죽을까봐 맥주 사발에 접시를 덮어 놓지 않는 정도, 딱 '그 정도'의 집을 원하는 욕심에, 다른 곳에 가고 싶은 욕심을 살짝 얹어서 짐을 꾸렸다. 막상 짐을 꾸리고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들을 정리하니 집이 깔끔해진 게, 더 있어도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새, 익숙해진 건가. 순간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혹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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