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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 한다. 할 줄 안다.

by 길 위에 있다 2010. 6. 10.


개정 전의 중1 교과서를 할 때에는

<이해의 선물>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직 개정하지 않은 고1 교과서에서는

박완서의 <그 여자네 집>, 만득이와 곱단이의 이별 장면에서, 만득이의 마지막 하소연에서

오늘 수업한 윤흥길의 <장마>에서는 외할머니가 구렁이를 달래는 장면에서, 그렇게 저승길로 삼촌을 인도하는 장면에서,

울컥한다.


수업하다가도, 어쩌냐, 감동적이거나, 울컥해서, 글을 읽다가 목이 멘다.
그래서 그 글들을 수업할 때는 각별하게 조심한다.


그리고 지금, 그 울컥함의 지존을 보여주는 다른 글의 문제를 내고 있다. 



<엄마 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그리고 <여승>, <보리피리>, <은수저>.  아, <은수저>



<은수저> - 김광균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아이가 없다
아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아기가 웃는다
아기는 방 속을 들여다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아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아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



고등부 문학 수업을 하면서, 계속 주문한다. 상상해 봐, 떠올려 봐. 그림을 그려 봐. 줄거리를 만들어 봐. 
그렇게 하다보면, 갖가지 일상적인 비속어가 난무하는 중에도 아이들은 외친다. 


"아, **(비속어), 슬프잖아요!!!"

백석의 <여승>을 하는 중이었다.
 

++++


여승(女僧) -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 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울컥.
드물지만, 아이들도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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