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바닥에 올린 글, 펌]
뭐 이래 저래, 약간, 반 백수 같은 신세라 몇 년 전부터 찜 해 두었던 곳을 휘리릭 다녀오겠다, 마음을 먹었습니다. 오로지 '개심사'라는 이름만 듣고 반하고, 가겠다고 마음 먹었던 게 민망하게 몇 년이 지나버렸는데(사실 충남은 멀지도않건만!) 근처에 뭐 다른 덴 없나, 알아보다가 간월도라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리지어 있는 새들은 절대 반갑지 않지만, 여하튼 철새가 많은 곳이라고도 하고, 섬에 있는 작은 절, 간월암이라는 곳도 궁금하고 해서, 겸사겸사 개심사-간월도 두 군데를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가깝기도 하고, 혼자 알긴 아까워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아침 7시 반에 집에서 출발해서 10시 반 즈음 도착했으니, 딱 하루면 다녀올 수 있는 곳입니다.
이래저래 버스 시간이 꼬여, '개심사-간월도'가 아닌, '간월도-개심사'가 되어버렸지만, 이게 또 참 다행이었던 듯 싶습니다. 간월도에 딱 도착하니, 썰물 때라, 바닷물이 저어기 멀찌감치 물러가 있던데요. 그게 장관이더군요.
1. 달 같은 곳, 간월도
서산 버스터미널에서 간월도 행 버스가 자주 있습니다. 시내 버스를 타고, 약 사십 분 정도 달리면 왼쪽으로는 논, 오른쪽으로는 바다를 보게 됩니다. 그럼 곧 간월도에 도착하지요.
날씨가 흐리고 꾸물꾸물 했는데 나쁘지 않았어요.
간월도가 종점입니다. 내려서 도로를 따라 주욱 올라가면 탁 트인 바다가 짜안-나타납니다. 왼쪽으로는 '천수만'이라는 표지판이 보이는데, 그쪽이 방파제인지, 방조제인지가 있고 철새도래지로 유명하답니다.
잠깐 바다, 갯벌, 하늘을 감상하세요.
달 같지 않습니까? 달 같습니다.. 화성? 목성? 왠지 우주적인 공간 같은!
그리고 친구도 생겼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바다로 가는 길. 어느 가정집에 멍멍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놀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녀석이 다다다다(정말로 다다다다) 달려왔습니다. 제 다리에 온 몸을 부비대며, 정신 사납게 팔짝팔짝 뛰어다니더니, 주욱 저를 지나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너무 웃겨서, 푸하하하, 웃으며 녀석을 따라 갔더니, 바다가 나왔습니다!
갯벌이 안마당이라도 되는 듯, 펄쩍펄쩍 뛰어다니다가,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다가, 그렇게 무심하게 서 있다가 사방천지 뛰어다니다가. 산책 나온 커플에게 관심을 보이더니 저를 버리고 그 쪽에서 알짱대고. 정말... 귀엽더군요!
나중에 그 해변을 벗어나려고 "가자!" 라고 불렀더니, 따라오더라는..... 암튼, 결국 멀리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신나게 뛰어노는 멍멍이는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바다가 전부, 놀이터였죠.
신나게 뛰어노는 사진은 없지만.... 왠지 철학적인 저 자태.
바다를 왼쪽에 두고 주욱 걷다 보면, 간월암이 나옵니다. 사진에서처럼 바다를 건너야 합니다. 제가 갔을 때는 물이 빠져서 건널 수 있었지만, 오후에는 물이 차고, 그럼 배가 있어야겠지요. 섬에는 단 하나, 간월암 밖에 없습니다.
어떤 선사가 간월암에서 달을 보며 도를 깨우쳤다고 하나... 그래서 간월암이라고 하네요.
간월암 안입니다. 아주 자그마해서, 전체를 다 둘러 보는데 10분이 채 안 걸려요. 어디에 서 있든, 바다를 마주하게 되는 절입니다.
멀리서 찍은 간월도의 모습입니다. 왠지 도사들이 살 것 같습니다.
2. 마음을 여는 절, 개심사
아줌마, 아저씨들께 "개심사 가려면 무슨 버스 타요?" 라고 물어보면 모두들
"가심사? 교통편이 안 좋아서..." 라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가심사...
그렇습니다. 교통편이 안 좋다는 것은 개심사 앞까지 가는 버스가 없어서 였습니다. 어디든지 지하철이나 버스가 코 앞까지 바래다 주는 게 익숙해지기도 했습니다만, 걷는 것 정도야 하고 걸었죠.
서산 터미널에서 신창까지 약 한 시간. 그리고 신창에서 개심사 입구까지 약 사십 분. 신창 정류장 근처의 가게 아주머니 말씀대로 걸어서 딱 40분 걸리는 길이었지만, 사진 찍느라 허비한 시간에 개심사가 딱 나올 때까지 절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 표지판. 이 길이 맞는 걸까, 맞는 걸까, 하며 포기하려고 하는 순간에 나타나더군요, 개심사!
신창까지 버스를 타며 가는 동안에도 참 신기했던 게, 익숙하게 보아온 산과 나무, 숲 사이로 민둥산 같은 산들이 불쑥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꼭 제주도 오름 같단 생각을 했었죠. 그리고 이런 산들, 언덕들은, 신창에서 개심사까지 걸어가는 중에도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나중에 개심사 입구에서 도라지인가를 깎아 팔던 아주머니에게 여쭤보니, 목장이랍니다. 나무는 없고 초목만 무성하고, 여름에는 소들이 나와서 풀을 뜯는다고. 그러고 보니 얼핏 예전에도 들은 것 같았죠. 개심사까지 걸어 올라 가는 길 주변의 목장들이 모두 김JP의 땅이라는 이야기. 암튼.
목장이라서 그런 걸까요. 개심사까지 올라가며 잠깐 길을 헤매고 목장 입구 근처까지 갔는데, 출입금지 팻말도 있었죠. 광우병 뭐시기...
중간 지점에 나타나는 신창 저수지입니다. 물을 가로질러 가면 빠르겠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길따라 차분차분 돌아가야지요.
드디어 개심사 일주문 도착. 이 문을 지나 다시 약 10분 정도 올라가면 절이 나옵니다.
개심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 돌표지석을 지나야 합니다. 세심동(마음을 씻는 곳), 개심사(마음을 여는 절). 그리고 조용하고 한적한 숲길을 걷습니다.
신창부터 내내 목장만 보고 걸었는데, 어느 새 숲이 나왔고, 또 어느새 절이 나타납니다. 숲 속에 콕, 숨어 있는 절입니다. 작고 아담합니다.
개심사 안.
개심사 대웅전
개심사 명부전
개심사를 둘러보고 나니, 어느덧 해가 넘어갑니다. 차 시간에 맞추어 바람같이 달렸고, 신창 정류장에 도착하니 이미 깜깜.
하루에 두 곳도 좋지만, 아무리 가까워도, 하루에 한 곳이 더 좋을 듯합니다. 여유있고 느긋하게 걸어다니면 좋은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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