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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르, غدير

무리드 바르구티 و

by 길 위에 있다 2021. 2. 21.

 

암만에서 지낸 지 2년이 넘어갈 즈음이었을까. 

아무도 아는 사람 없던 곳에서 그나마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 거의 한국으로 떠나고, 나는 알고 보면 누구를 만나서 인연을 트는 데 굉장히 서투른 인간이라 어디 어디 나가서 활동 범주를 넓히는 것도 쉽지 않았고, 오히려 그래서 더 의식적으로 행사들을 찾아다녔다. 아이러니하지만, 오히려 그런 데를 찾아다닌 것은 그런 곳은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거나(아랍어를 배우는 인간이니까!) 누가 나에게 말을 걸까 하는(외국인이니까!) 두려움에서 좀 벗어나서 감흥을 느낄 여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려면 내 나름 '서치'를 충분히 하고, 몇 안 되는 아랍 친구들에게 미리 내 관심사를 어필해야 했으며, 나는 잘 사용하지 않는 페이스북에서 몇 군데 '좋아요' 정도는 눌러줘야 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것인지는 기억이 잘 안 나고, 어찌 하다가 거기까지 가게 됐는지 또한 기억이 안 나지만 무리드 바르구티의 신간 발표회를 가게 됐다. 그런 걸 뭐라 하던가...  대학 때 모모 작가 신간 발표 즈음 학교에서 그런 발표회를 했는데... 명칭도 있었지만 기억이 안 난다.

 

여하튼 무리드 바르구티의 책은 한국에서도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رأيت رام الله)>라는 책이 번역되어 출판되어 익숙했고, 그의 새로운 시집이 요르단에서 출간되어 시낭송회를 한다길래 찾아갔었다. 아, 아마 한국에서 가져간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까지 가져갔었다. 이건 그냥 반사적이다, 저자 사인 받겠다는 욕심 뿜뿜.

 

백발이 성성한 아저씨(또는 할아버지)는 시집에 수록된 겁나 낭만적인(듯 느껴지는) 시들을 아직도 기운이 넘치는 목소리로 낭송했고, 아랍 시를 낭송할 때 그 특유의 가락들도 유려하게 이어갔다. 물론 난 아랍 사람이 아니니까 잘 했는지는 모른다. 그냥 젊은 학원 선생님들이 하는 것과 그닥 다른 것을 못 느끼겠으니 잘 하는가 보다 했을 뿐이다. 

아무리 거기서 아랍어를 배운 지 2년이 넘어갔어도, 또는 2년이 다 되어 갔든 난 시를 이해하고 알아먹을 정도로 아랍어를 잘 하지는 못했고, 그냥 '아.. 훕(사랑)' 뭐 이 정도였으며, 내내 '와, 외국인이다!'라는 시선을 받았던 기억이 더 많다. 같이 간 한국 친구와 '하나도 못 알아먹겠어. 아랍어 샹'과 같은 맥락의 얘기도 했던 거 같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 저자 사인은 못 받았다. 부끄러워서. 

 

 

갑자기 그때가 떠오른 것은 며칠 전 무리드 바르구티가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그 시낭송회에 함께 갔던 친구에게 소식을 전하니 "코로나 때문에?!" 할 정도로 시국이 시국이지만, 내가 읽었던 기사에서 그런 내용은 없었으니 올해 벌써 일흔일곱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노환이었겠구나 싶다.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이고, 이집트에서 공부하는 중에 67년 전쟁이 일어났으며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를 보면, 몇십 년 만에 고향에 돌아가서 느끼는 낯선 감정, 하지만 그 몇십 년만에 돌아가서도 익숙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이미지들에 대한 반가움과 서러움, 그리고도 그 몇십 년 동안 변해 버린 내 마을과 내 기억에 대한 이질감 등등이 잘 표현되어 있다. 아, 하지만 끝까지는 못 읽었다. 내내 읽다 말다 하다가 한국어를 잘 아는 팔레스타인 친구에게 선물로 주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팔레스타인 작가의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받은, 한국어를 배운 팔레스타인 친구. 너무 감격스러워해서 나도 감동했었다. 다시 읽어야겠다, 그 책.

 

친구 말대로, 여전히 총기 가득한 그의 눈빛이 아쉽고, 암만에 있었다면 추모 행사에 갔을지도 모를 정도로 그 시낭송회는 인상적이었으며, 우리가 그때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도 기억이 날 정도로 그 시간은 좋았다.  

 

*****

 

아마 무리드 바르구티의 신간 발표회 이후, 그의 아들이 요르단 대학교에 왔었다. 무리드 바르구티의 아들 타밈 바르구티. 정말, 놀랍게도 그는 톱스타였다. 그가 시낭송회를 하는 강당은 시작 시간 한참 전부터 만원이라 강당 건물 밖까지 줄이 늘어섰고, 나는 저 멀리 그 줄만 바라보며 "대박!" 외치다가 한국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야, 시인이 시낭송회를 하는데, 사람이 겁나 많아!" 

내가 뭐 그 사람 시를 알아서 찾아간 건 아니었고, 요르단 대학교는 내 활동 범위 내였던 데다가 무리드 바르구티의 아들이라니까 궁금해서 살짝 구경할 셈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강당 근처도 못 가고 밖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 보고, 타밈 바르구티라는 이름만 듣고도 열광하는 사람들 보고 놀랐다. 그 시인이 정말 유명하구나, 라는 마음과 함께, 시인이 이렇게 열광적인 애정을 받을 수도 있구나, 라는 마음도 덩달아 들어서. 

강당 건물 주변에 바글바글한 사람들 사진을 찍어 한국 친구에게 보여주니, 친구 또한 "시인이라고!?"라고 놀랐다. 놀랄 수밖에. 

진심, 엑소에 열광하던 내 아랍 친구의 반응과 타밈 바르구티의 이름에 열광하던 아랍 친구의 반응이 그닥 차이가 없었던 듯하다. 

 

******

 

아, 의식의 흐름. 

아, 무리드 바르구티의 아내도 정말 유명한 이집트 작가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바르구티의 아내, 라드와 아슈르(?)를 먼저 얘기한다. 그녀의 작품은 이집트에서 엄청 유명해서, 이집트에서는 그 책을 훨씬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라나다 3부작 같은. 

아, 무리드 바르구티와 라드와 아슈르 사이에서 타밈 바르구티가 나왔구나. 역시... 유전자의 힘이란...?

 

******

 

무리드 바르구티의 기사를 보고 단지 추모의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편히 쉬시길. 

계속 써 가며, 싸워 가며

찾던, 꿈꾸던 이들 

모두 편히 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