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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신변잡기

by 길 위에 있다 2011. 1. 8.



평소에 꿀물은 달아서 먹지 않는다.
몇 년 전, 원래 술을 지독하게 먹고 난 후에는 두통이 심해져 두통약을 두 알씩 먹다가
아저씨들처럼 꿀물로 숙취를 해소하면 어떨까 싶어 따뜻한 꿀물을 먹었던 게 이제 익숙해져
꿀물을 먹기 시작했다. 술을 많이 많이 마신 다음 날에는.

꿀물은 달고 따뜻하다.
하지만 술을 완전히 깨기 위해서는, 라면이나 짬뽕 국물 같은 게 필요하고, 화장실도 시원하게 갔다 와 줘야 하고, 잠을 푹 자 줘야 한다.
꿀물을 먹는다고 술이 깨는 건 아니다.

몸을 혹사하면 몸을 편안하게 해 주고, 몸을 위로해 주어야 하는 게 예의다.
가게에서 파는 꿀물 따위로 입만 달래면, 몸이 슬퍼할테다.
왜 술을 마셨지, 왜 그렇게 많이 마셨지, 왜 그들과 마셨지, 요즘 왜 이렇게 자주 마시지, 왜 그렇게 끝까지 앉아있지,
한탄한 들, 힘들어하는 몸이 기운차리지는 않는다.
라면이나 짬뽕 국물을 마시고, 화장실도 귀찮아하지 말고 가고,
잠을, 잠을, 잠을 자야한다.





온 몸의 에너지가 상승하더니 머릿속으로 모여들어 거침없는 말들로 피어나 '머릿말-본문-맺음말'로 구성되었지만 차마 터져 나오지 못하고 흰 머리로 솟았다더라. 





에너지가 빠져 나간 몸은 세포 하나하나가 파업에 들어간다. 세포들의 파업에 민감해지면, 몇날며칠 나도 파업한다. 







요즘 자다가 신기한 일을 겪는다.
코 고는 소리를 내며 숨을 거칠게 들이쉬고 깬다. 새벽이거나 아침이다. 
이불을 두 개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몽땅 뒤집어 쓰고 자다가 그 소리에 놀라서 깨면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때가 꼬질꼬질하고 눈이 하나 없는 인형을 쥐고 있다. 
이불 속의 산소를 다 마셔서, 산소 부족으로 잠에서 깬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어느 날 일어나보니 두 개의 이불 중 겉에 덮어 놓은 이불이 발치에 내팽겨쳐진 걸 보고
다시 잠버릇이 험해진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칠게 버둥대고, 거칠게 코를 고는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어떻게 그런 소리를 내지
그런데 어떻게 안쪽 이불은 잘 덮고 있고, 바깥 쪽 이불만 나뒹굴고 있지
그런데 그렇게 버둥댄거면, 어떻게 이불 속에서 머리카락 하나 밖으로 안 내밀고 웅크리고 있을 수 있지.






다시 파업 중이다.
과거의 신변잡기가 현재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고, 분노하고 자포자기한 에너지가 다시 머릿속으로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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