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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20110730-31 부산, 영도

by 길 위에 있다 2011. 8. 9.
  




KTX는 처음 타 봤다. 그냥 천천히 가면 되지, 좀 빨리 가겠다고 거금을 들이는 것은 늘 엄두가 안 났다.
'투쟁과 함께 하는 휴가'를 보내겠다는 가당치도 않은 거창한 계획은 제주도를 포기하면서 물 건너 갔지만, 이래저래 뻥을 쳐서 휴가의 시작을 부산에서 보내는 것은 가능해졌다.
사실, 85호 크레인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있는 사람을 보며 그 아래에서 밤을 보내는 것은 늘 내키지 않았다.
희망버스가 몇 번을 오고 가는 동안에도 그랬다.
그런데 부산 가는 KTX의 일행을 구하는 사람의 얘기를 듣고, 저 갈래요, 그리고 예약을 하고, 그것에 맞추어 나머지 일정을 짰다. 뭐, 일단 가보는 거지.

절반 이상이 생판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부산까지 가는 동안, 열차 안의 공중에 매달린 모니터에서 연신 나타나는 'KTX는 평창으로 달려가고 싶다.'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광고를 내내 지켜보다가, 맥주도 한 잔 하다가, 별로 안 빠르네, 라고 생각하다보니 부산에 도착.
부산역 앞의 집회를 지켜보다, 역 뒤의 차이나타운에서 중국 음식, 빼갈을 시켜먹고, 마시며 집회가 끝나길 기다렸다. 
아, 집회가 끝나서 같이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분명히 가다가 막히고 말테니, 미리 움직이자고 했던가.

아,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한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여자 여덟 명. 우리는 우리의 복장에 자신만만하며 '아무도 우리가 한진 가는 지 모를거야.'라고 생각하며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어찌나 많은, '나는 한진 가요.'라고 온 몸으로 말씀하시는 아저씨들이 정류장에 바글바글한 지, 식겁하고 자리를 떴다.
나름 머리를 굴려, 다른 방식으로 가보자고 모의를 하고, 어리버리한 무진은, 네네, 하며 쭐쭐 따라갔다.
남포동 가는 버스를 타고, 자갈치 시장을 걸어서 통과하는 동안
우리가 일부러 포기했던 영도 가는 버스를 탔던 사람들이 남포동에서 끌려 내려 왔고, 나중에야 그 사람들을 끌어 내었던 사람들이, 어린 것들 하는 꼬라지가 마음에 안 찼던 '어버이'셨던 것을 알았고, '놀러 온 사람 같을 거야', '태종대 가는 중이라고 합시다!'라고 자신만만하게 자갈치 시장을 횡단하던 우리들에게 자갈치 시장에서 꼼장어를 팔던 아줌마가 '가서 험한 꼴 당하게 거긴 왜 가, 와서 꼼장어나 먹어!'라고 해서 우리의 행색이 우리의 마음 같진 않다는 것을 알았다.
하긴, 불도 다 꺼져 깜깜한 자갈치 시장을 네 명씩 일렬로 어둠의 골목을 걸어가는 모습은, 한진이 아니라 구역 확장을 위해 한판 뜨러 가는 조폭과도 같았다. 그래서 대열을 바꾼다는 게, 또 두 명씩 짝을 지어 일렬로 걸어가던, 아, 여행객들.

자갈치 시장을 지나 영도대교 앞에 섰는데, 자동차도 서 있더라. 영도 들어가는 차는 없고, 영도에서 나오는 차는 꽉 막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 이러면 영도 사는 사람들은, 화가 나겠구나 싶었다.
걸어서 영도 대교를 지나, 영도 안 쪽의 차벽이 서 있는 곳(한진까지 못 간 사람들이 좀 모여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 동안,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로 결합해야 하는지 갈팔질팡하고, 여전히 여행객 복장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우리들에게 사람들은 계속 물었다.




어디에서 모인답니까?

 

 

늘 5분의 차이가, 길을 좌우하는 법 
남포에서 어버이들께 횡포를 당할 뻔 한 걸 피한 것도 5분 차이로 다른 버스를 타서 였던 거고,
영도 대교를 걸어서라도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랬고
차벽 앞에서 벌어졌던 험상궂은 일도 우리가 자리를 옮기니까 우리 자리에서 벌어졌고
우리가 차벽 앞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고 나니까 전경이 사람들을 해산시켰다고 하던가, 연행을 했다고 하던가.
아, 어디로 가야하지, 어디에 사람들은 모여 있는 거지.
결국 산을 탔다. 영도의 오르막 골목길을 해치며 한진 앞,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모여 있는 곳까지 내내 걸었다.
높은 곳으로 올라 갈수록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고, 곳곳에 크레인들이 서 있었다.
골목 골목 전경들이 막고 서 있으면 돌아 나오고, 다른 골목을 향해 갔다.
새벽 영도 골목을 다다다다 걸어가는 한 떼의 무리들.
골목 모퉁이에 앉아 있던 할머니는 전경이 막고 서 있는 길을 보고 난감해 하는 우리들에게 조용히 손가락을 다른 편 골목을 향해 가리켰다. 그래, 거긴 전경이 없었다.




그리고 네 시간만이던가.


한진 앞의 집회 현장에 도착했다. 대오 앞 무대에서, 동지들에게 박수를 쳐 주라는 외침이 들리고, 대오 끝에서 녹초가 돼서 들어 오는 우리를 비롯한 산꾼들의 모습을 보던 사람들이 손뼉을 쳤다.

우리는 모두 중얼거렸다. 그래, 우리가 좀 박수를 받을 만하지...


집회를 하고, 도시락을 먹고, 등불을 날리고(불날 뻔 했잖아. 그런 건 좋지 않아.), 공연을 하는 동안(아, 스카, 좋더라요, 덩실덩실)
지친 사람들은 아무 바닥에나 누워서 잠을 청했다. 미리 좋은 자리를 못 잡았던 나도, 누가 깔아 놓은 돗자리 위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얼굴은 땀범벅, 온 몸에서 담배 냄새와 땀 냄새가 폴폴 풍겼다.
여기가 한진 어디 즈음인지, 크레인은 어디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여기서 내는 소리가 그쪽에서도 들릴까 싶었다. 그럼 덜 외롭고, 덜 힘들고, 덜 무서울까 싶었다.






정말, 내려오게 하고 싶었다.




일요일 낮, 집회를 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예약된 KTX를 타기 위해,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영도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 알았다.
그 전날 우리 앞을 가로막았던 차벽만 지나면 바로 한진이라는 걸. 당연히 그랬겠지. 그 차벽 때문에 네 시간을 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까운 곳에 85호 크레인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며 본 크레인은 너무, 높았다.





또 5분. 이번에는 좀 더 길었나.

 


우리가 나오고 얼마 안 되어, 다시 영도 안팎을 오가는 버스가 끊겼다고 했다. (아, 얼마나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스마트폰이란.) 하긴, 영도 안 버스 정류장의 안내판에는 희망버스가 오는 이틀간 버스 운행을 중지한다고 공고문도 붙여 놓았더라.

그렇게, 한 지역을 통제하고자 하는 게, 가능한가.













기차를 타기 전까지, 부산역에서 편하게 한잠 자고 싶었던 우리는, 암튼, 역 안의 럭셔리한 커피숍 구석 자리를 잡았다.

커피는 한 잔씩 시켰지만, 나는, 내가, 커피를 마시다가 잠이 들었다. 엄마한테 오는 문자,전화도 받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엄마는, 어떻게 된거야, 교회는 가도록 해, 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아직 문자가 익숙치 않아 '어떻게 돈거야'라고 보내서 그 의미를 해석하느라 힘이 들었다. 정말로 엄마가 나한테, 너, 돌았어? 라고 하는지 알았다. 혹시, 나, TV에 나왔나, 쫄았다.

다시 'KTX는 평창으로 달리고 싶다.'라는 광고를 보며 한 시간 반.

세수 한 번 못하고, 귀찮아 이도 안 닦은 채, 먼저 대전에서 내렸다. 대전은 정말 더웠다.
옥천 가는 기차표를 끊고, 화장실도 갔다 왔는데 삼십 분이 남았다.

다시 담배 한 대를 피우며 기차를 기다렸다.




 

이건 좀 위험했다고 봐.

    
 

 

부산 토박이 스카 밴드. 아, 흥겨워진 할매


  

오랜만, 사이 공연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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