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무진'적'

by 길 위에 있다 2015. 8. 31.

 

 

그러니까 그게 아닙니다.

 

나는, 확실히, 지금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상태입니다.

사실 늘 그랬습니다. 늘 머리가 하얗게 세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삽니다'. '오늘'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 것 같다는 것이 아니라 늘 그렇게 살아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상태이면, 두피 부근의 모근이 간질간질하면서 머리카락이 세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불안합니다. 따라서 늘 평안한 상태를 지향합니다. 아니, 지향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평안한 상태일 때, 가장 평안할 뿐입니다.

 

동어반복, 이상한가요?

일이 너무 많든, 잠을 못 자던든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이르든, 그래서 내가 궁시렁거리며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든 어떻든,

그 상태에서 저는 평안함을 느낍니다. 소소한 것에서 마구 즐거워하며 평안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앞의 '평안한 상태'는 아주 단적으로 불안함이 적을 때입니다.

중요한 것은, 적다는 것이지,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외롭고, 쓸프고, 막연한 공포감이 느껴지는 것.

이것은 늘 갖고 가는 것이라 생각하며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칠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어떤 변수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들이 사라지기를 원하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평안한 상태'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며, 말초적이며, 물질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것들이 일정정도 해소될 때, 그렇게 만들어진 평안함들이 나를 가장 안정적인 상태로 만듭니다.

 

오히려 이런 상태가 나를 안정지향적인 인간으로 만들까봐,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합니다.

안정적이며 평안한 상태가 나를 무던한 인간이 아닌 '무딘' 인간으로 만들까 봐 경계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또한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딱 그 지점입니다.

아니 늘 그 경계에 있었는데, 지금은 굉장히 불확실한 상황에서

내가 가장 불안해 하는 선 위에

그리고 내가 가장 경계하는 선 위에

발을 다 걸치고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기 때문입니다.

 

아, 뭐라 말해야할까요.

충고와 걱정은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나의 상태는 알아 주었으면 해요.

오랜 세월 봐 왔기 때문에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알아 주었으면 해요.

 

나도 나를 잘 몰 모르거든요.

 

아니, 내가 나를 잘 모른다는 것은 오히려 좀 아니네요.

난 나를 너무 잘 알아요.

변수에 따라 너무 많은 행동 방식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내가 나를 염려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상황에 따라 나올 수 있는 백 가지 정도의 내 모습이 떠오르는데 어떤 것은 최악이고 어떤 것은 아주 바람직하죠.

하지만 뭐가 나올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단지 짐작하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겁도 많아지고, 나이가 들수록 더 안정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 뿐이고,

이것을 경계하며 살아야겠다, 라고 다짐하는 것뿐이에요.

 

그래요, 이건 좀 됐어요. 다짐하는 것. 경계할 지점을 자주 되새기는 것.

 

그러니까 나는 아주 용기가 있지만, 아주 겁이 많고,

나는 아주 내 맘 가는 대로 살지만 아주 틀에 박혀 살고 있기도 하고

나는 계획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아주 스트레스를 받지만, 계획을 지키지 못하는 게 뭐 대순가, 이렇게도 생각해요.

사람들은 다 그렇죠?

나도 그래요.

 

그런데요, 나는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있고, 그건 내가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한테 그냥 '경험'을 해 보고, 그 순간에 행복함을 느끼라는 조언은 정말 쓸데 없어요.

나는 그 경험과 그 순간의 행복함이 전부는 아니거든요.

나는 충분히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고, 정말 작은 데서 그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요.

어디에 있던

나는 누구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어떤 부분과 상황에서 감동을 느끼고

그 공간과 시간과 경험에

누구보다도 200만배는 강하게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그런다고 해서 나는 그게 전부가 되지는 않아요.

그거면 돼, 라고 생각했던 때는 옛날옛적에 지났어요.

그런 식의 의미 부여가 '나'에게는 쓸 데 없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니까, 여행과 같아요.

난 여행을 좋아하지만, 그게 나에게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에요.

그 순간에 그곳이, 그리고 거기에 있는 내가 좋은 거에요.

그게 내가 돌아온 후에 나의 삶에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나를 아주 잘 알아서, 나는 너가 이랬으면 좋겠다, 라는 말은 삼가해줘요.

그냥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 상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