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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변화

by 길 위에 있다 2010. 1. 29.


1966년 봄, 어느 기자가 사이공에서 한 공군 장성과 인터뷰를 했다.

기자: 철학적인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모두 멈추어야 한다고, 그렇게 하면 이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협상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장성: 글쎄요, 우리는 우리의 맡은 바 일을 하기위해 이곳에 파견 됐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고 있으며, 이를 완수할 때까지 여기 머무를 것입니다.

기자: 감사합니다.

[전쟁에 반대한다.], 하워드 진, 2003년 


2003년, 숙소는 쩔쩔 끓었다. 늘 그랬듯 50도를 오르내렸을 지도 모르는, 어느 날이었던가.
아마도 의자가 여럿 있던 큰 방에서,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잠깐 낮잠을 자고,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조용조용, 그렇게 각자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나. 

"아핫핫! 뭐야... 지금이랑 똑같잖아.. 아핫핫!" 

책을 읽던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어 버렸다. 아마도 컴퓨터로 뭘하고 있었던가 했던 곰을 불러 읽어주고, 책을 보여주었다. 곰도, "아핫핫!" 웃어버렸다. 
우리는 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맡은 마 일을 하기위해 이곳에 파견 됐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고 있으며, 이를 완수할 때까지 여기 머무를 것입니다.


토씨하나 안 달랐다. 마침 몇몇 미군들의 인터뷰를 진행한 뒤였다. 많은 군인들이 '도와주러'왔다고 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젊은 군인들은 저렇게 얘기했다. 맡은 바 일을 하기 위해 왔고, 그 일을 완수할 때까지 머무를 것이라고.

1966년이나, 2003년이나, 베트남이나 이라크나, 여전한 그 탐욕에 놀랐고, 오만함에 화가 났고, 40년 동안 했다는 말이 고작 저것 밖에 없는지 그 멍청함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게, 40여년 동안, 그리고 그 이후로, 변한 것이 없나.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했던가.



느닷없이, 저 상황이, 저 글이 떠오른 것은 인터넷에서 본 부고 기사 때문이었다.
하워드 진이 세상을 떠났다. 저렇게 인상 좋게 생긴 할아버지인 줄 몰랐을 정도로, 이 할아버지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기사를 보는 순간, 가슴이 살짝 내려 앉았다.

어떤 책이, 어떤 영화가, 어떤 음악이, 어떤 사람이, 어떤 '나의 시대'의 궤적에 놓일 때가 있다. 거창한 게 아니다. 
델리 스파이스의 '챠우챠우'를 들으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교복 입고 고척교를 지나다니던 때가 떠오르고
'섹스 앤 더 시티'를 생각하면 경희대 근처의 담배 연기 자욱한 반지하방에서 땅 속으로 꺼져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가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그러니까 이 할아버지와 이 할아버지의 책 <전쟁을 반대한다>는 바그다드에 있었던 20대 중반의 궤적에 놓여 있는 셈이다. 아주 단순하게, 쉽게 읽혀서 좋아했지만.

다시 그 책을 떠올리면, 역시나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어디서 누군가는, 변화를 위한 방법들을 고민하지 않던가.   

그렇게 시대는 변해간다.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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