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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없앴다

by 길 위에 있다 2016. 2. 17.

원래, '옛날이야기'가 제목이었는데, 이 제목을 검색한 유입수가 대박 많아짐. 

제목, 버림.  


엄마

-엄마는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태어났다. 위로 다섯 명의 언니오빠가 태어나자마자 죽고, 엄마가 첫째가 되었다. 엄마 밑으로 줄줄이 또 다섯 명의 동생들이 태어났다. 
-예전부터 "어려서부터 밥을 하고 도시락을 싸야 했어, 난."이라고 엄마한테 구시렁거리면 "난 일곱 살 때 떡을 했어."라고 엄마는 말했다. 
-작년에, '떡을 한 딸'과 '밥을 한 딸'의 맥락이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간식거리가 궁했던 엄마는 동생들을 달달볶아 떡을 했다. 쌀이 귀했던 시절이었다. 일곱 식구가 다 처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떡이 많아서 외할머니는 이웃에 뜬금없이 떡을 돌려야 했다. 
- '떡을 한 딸'은 엄마에게 맞았고, '밥을 한 딸'은 엄마에게 맞지 않았다. 딱 그정도, 달랐다. 
-할머니의 회초리를 피해 재빠르게 도망간 엄마는 마당 귀퉁이에 있던 커다란 나무에 올라갔다. 엄마는 자주 그 나무에 올라가야 했다. 그 나무에 올라가면 할머니가 뭘하는지 살필 수 있었다. 엄마는 어둑해지면 은근슬쩍 내려와 집안에 숨어들었다.
-다시 작년에, 엄마와 이모네와 외삼촌네와 강원도, 그 집에 갔다. 집은 없어졌고, 나무도 사라졌다.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는 열 아홉에 시집을 왔다. 할머니가 시댁에 가마를 타고 들어가던 그 때, 할아버지 댁에서 초상이 났다. 죽은 사람이 나와야 하는 문으로, 이제 막 시집 온 새색시의 가마가 들어갈 수는 없었다. 웅성웅성. 가마꾼과 시댁 식구들이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했다. 할머니의 가마는 담을 넘었다. 
- 외할머니가 시집을 오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집에 구렁이가 나타났다. 집안에 들어온 구렁이를 함부로 내쫓는 게 아닌데, 아직 어리고 겁많고 '뭘 잘 모르던' 어린 색시 외할머니는 구렁이를 장대로 쫓았다. 구렁이는 집밖으로 쫓겨나 어디 논두렁인지 밭두렁인지 사이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뒤로 집안팎에서 사람이 죽는 일이 생기거나, 되던 일이 망조가 들었다. 구렁이는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거였다. 


엄마의 아빠

-외할아버지는 옛날 이야기를 잘 해주었다. 외할아버지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동네 꼬마들도 모여들었다. 엄마는 외할아버지에게서 심청이의 이야기도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선했고, 조용했고, 화를 잘 내지 않았다. 그리고 급한 게 없었다. 외할머니는 그래서 더 급해졌고, 늘 소리를 지르고, 다섯 아이들을 다그쳐야 했다. 
-엄마는 아홉 살 때 불을 냈다. 같이 장난 친 친구들은 점점 커지는 불을 보고 기겁하여 도망쳤다. 엄마도 겁을 먹고 숨기는 했다. 엄마가 불을 낸 곳은 동네 공동 묘지였다. 무덤들이 시커멓게 그슬려 버렸다. 엄마는 또 맞았다. 강원도 산골짜기에 있는, 이제 사람들이 돌보지 않는 무덤들이 많은 그런 묘지였다. 외할아버지는 무덤들에 제를 올리고, 무덤들을 손봐야했다. 
-그리고 한동안, 버려두었던 묘지를 돌보기 위해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거나 타지에 나가 있던 무덤 주인의 가족이 불난리 이야기를 듣고 나타나 대거리를 해댔다. 그렇게 외할아버지가 머리를 조아리고, 다시 제를 올리는 일들이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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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공부가 또 안 되고, 뜬금없이 생각났다. 옛날에는 이 이야기들을 모아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지금은 이 이야기를 모아서 이야기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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