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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20110731 충북 옥천1 - 詩

by 길 위에 있다 2011. 8. 13.





온라인 상에서 수많은 섬을 헤집고 다니다가 결국 휴가지로 낙찰된 곳은 내륙이었다. 바다 대신에 호수와 강이 있는 곳, 충북 옥천이었다. 
휴가 기간, 가장 성수기인 때, 사람이 없는 곳을 찾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다행히 지인1의 '정지용 시인의 고향 영천'을 tv에서 봤는데 좋더라는 말에 검색을 시작해서 '옥천'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정지용 좋아했어?" 라며 궁금해 한 지인2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긴 그렇지만 왠지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라니까 또 거길 가는 게 그닥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라는 요지의 비슷한 말을 하며 옥천으로 정했다. 그리고 옥천에서 돌아 온 날, 지인3의 "'옥천에 똥이 많다'는 소설 있지 않아?"라는 말에 "녹천이거든요!"라며 코웃음 쳐 주었는데, 이러나저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왠지 문학적인 휴가였단 생각도 든다. 녹천에 똥이 많든, 옥천에 똥이 많든.



1. 옥천읍- 옥천 구읍

옥천역


옥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팻말은 ''향수'의 고향 옥천'과, '옥천 포도'이다. '옥천'이라는 동네도 관심 갖고 지켜본 일이 없으니 옥천이 정지용 시인의 고향인지도 몰랐고, 포도가 유명한지도 당연히 알지 못했다. 돌아오는 날까지 안타깝게도 옥천 포도를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옥천역에서 가깝다는 정지용 시인의 생가가 있는 옥천 구읍은 옥천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가야할 곳이었다. 
옥천역 매표소 아가씨에게 옥천 지도와 안내 책자를 받으며 구읍에 어떻게 가냐고 물었더니, 덥지만 않다면 걸어가라고 말씀 드리고 싶지만 너무 더우니 어디어디를 가서 버스[각주:1]를 타라고  알려 주었다. 처음에는 껌이지, 그 정도 걷는거야, 했다가 곧 포기했다. 거의 밤을 새고 도착한데다가, 날도 너무 더웠으니. 

 

역시, 정지용 시인의 고향. '지용시비'


 

아직, 날씨는 괜찮았다. 옥천역에서 구읍까지 걸어가는 길.

어디를 가나 산이다. 어느 마을이나 강 아니면 작은 개울이라도 흘러가고 있다. 여기저기 슬렁슬렁 걷다 보면 산을 바라보고 있거나, 물소리를 듣고 있기 마련이다. 산 속에 포옥 들어 앉아 있는 마을들 속에, 나 또한 어느새 포옥 들어가 있다. 암튼 정말 신기하다. 이 놈의 땅은, 어찌나 산도, 어찌나 물도 많은지.
몇 번 가 본 적도 없는 충청도에 대한 편견만 있어서, 산도 없고 물도 없는 작은 소도시들만 떠올리고는 했는데, 옥천도 역시나 산이 둘러 싸고 개천이 '지즐대는' 동네였다.
경찰서와 병원, 군청 등이 자리잡은 일종의 신 시가지와 같은 옥천읍도 마찬가지였고, 옥천역이 생기기 전까지 중심지였을 옥천 구읍[각주:2]도 마찬가지였다.  




2. 생가'들'

옥천 구읍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두 사람이 시대를 다르게 이웃하고 있던 동네이다. 정지용 시인과 육영수 여사. 사실 육영수 생가는 가지 않았으니 얼마나 가까운 데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름 옥천 구읍의 관광 명소이다. 
정지용 생가와 박물관을 나와서 그 근처의 꽤 유명한 밥집에서 자그만치 8천원짜리 비빔밥을 먹고(그 집에서 가장 저렴했다. 눈물났다.) 일어나려는데, 마침 정지용 생가에 갔다 온 듯 대화를 나누는 가족들 중 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이 근처 어디가 좋으냐고, 육영수 '여사' 생가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고,  나도 '육영수 생가'는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가까운 것 같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잠시, '아, '육영수 생가'라고 해서 버릇없어 보였을까?'라고 되도 않는 고민을 했다. 결국 '버릇없어 보였을까?'가 아니라 '버릇없는 게 들통났을까' 고민해야 한다는 지인 4의 말대로, 내내, 뭔 생가까지 만드나 싶은 마음이긴 했지만 단지 호칭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줄여 부른 것이라는 것을 좀 알아주어도 괜찮겠다 싶다. (그래서 여기서도 그냥 통일하겠다. 정지용 생가, 육영수 생가)
육영수 생가를 단장해서 공개한 것은 이제 일 년 남짓 되었다 한다. 육영수 여사가 영부인이 된 것이 득보다 실이 많았던 형제들이 거의 집을 내버려 두었고, 그걸 작년에 군청과 무슨무슨 단체들이 인수하여 생가지로 공개하고자 했다. 하지만 형제들이 '도장'을 찍어줘야 진행되는 일들인데 영 형제들도 만나기 어려웠고, 누구는 돈도 원했고 참 힘들었다고 한다. 이래저래 애를 써서 간신히 형제들에게 생가를 인수했고, 그 생가는 이제 군의 것이 되었나 보다. 이러한 이야기를 풀어 주었던, 셋째 날 느닷없이 탔던 택시의 기사 아저씨가 바로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 고생고생 서울행을 했던 분이다. 군청에서 일하시다가 퇴직하고 택시 운전을 하던 아저씨는, '아 그래요? 하하'라고 웃지만 영 반응이 시원찮은 서울 처녀가 걸렸는지, '물러나고 나면 하나 가득 숨겨 놓은 돈이나 비리가 나오는 대통령이 수두룩하고, 지금 대통령도 반드시 그렇겠지만, 이런저런 얘기가 있어도, 그래도 숨겨 놓은 재산 하나 안 나온 건 박정희 대통령 밖에 없지 않습니까?'라고 해서 더 시원찮은 반응만 얻었다. 


3. 시인 정지용의 시가 있는 마을

저 다리 건너 뵈는 초가집이 정지용 시인 생가

정지용 시인이 태어나서 중학교를 다니고, 장가까지 갔던 옥천 구읍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실개천이 지즐대는 곳'이라고 하기에는 사실 넓은 벌은 어디이고 실개천이 어디있는지 잘 모르겠는 정도로 작은 동네이다. 지금의 그 나즈막한 건물들도 없을 때는 '넓은 벌'이었을지 모르겠고, 생가 앞의 작은 개천이 그 지즐대는 실개천있다고는 하지만, 복개 해버려서 이제는 수량이 더 적어진 개천이 지즐대는 걸 듣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왠지 감개무량한 건 무엇때문인지. 그러니까, 정지용 시인의 그 자그마한 초가집을 개천 건너편에서 바라보며 살짝 건물들도 지우고, 아이들이 멱 감고 놀만큼 개천을 살짝 늘려 보며 '향수'의 앞 구절을 읊어보니 얼추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아마 어디서 황소 울음소리라도 들렸으면 감동까지 했을지 모르겠다.   



혜선 상회

잘난 남보다 조그마치만
어리둥절 어리석은 척
옛사람처럼 사람 좋게 웃어 좀 보시요

정지용 시 ,<내 마음에 맞는 이> 중





이 동네가 인상적이고, 좀 입소문이 났던 이유는 곳곳에서 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간판을 리모델링하며 폰트와 색감을 통일해서 관광지 같은 느낌을 주는데, 흔히 시골마을에서 느끼는 정감 있는 간판은 아니라하더라도 가게 이름 옆에서 살랑거리는 시구절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어떻게 시를 고르고, 구절을 고르고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게와 어울리는 구절을 고르려고 애썼다는 것도 심심찮게 느낄 수 있었다.  정미소, 우편 취급국, 노래방, 중국집, 식당 등등 가게의 성격과 이름에 어울리는 구절이 가게 이름 옆에 수줍게 자리 잡고 있었다. 

 








문정식당

춘椿 나무 꽃 피뱉은 듯 붉게타고
더딘 봄날 반은 기울어 물방아
시름없이 돌아간다

정지용 시, <홍춘> 중



 

문정 정미소

곡식알이 거꾸로 떨어져도
싹은 반듯이 우로!

정지용 시 <나무> 중


 



 

정지뜰(음식점)  

불 피어오르는 듯 하는 술 한숨에
아아 배고파라.

정지용 시, <저녁해ㅅ살> 중









우편 취급국
모초롬만에 날러 온 소식에 반가운 마을이 울렁거리여
가여운 글자마다 먼 황해가 님설거리나니...

정지용 시, <오월소식> 중









사랑 노래연습장

항상 머언 이, 나는 사랑을 모르노라

정지용 시, <그의 반> 중

명광 정육점(이건... 지나치게 잘 어울리는 것 아닌가.)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정지용 시, <향수> 중



정지용 시인 생가 쪽에서 바라 본 마을 거리






  




 

관광 옥천을 만들려는 목적이었는지 모르겠고, 확실히 옥천에는 지용제, 지용 문학상, 지용 문학회 등 너무 정지용 시인 사업이 많다 싶기도 하지만, 정지용 시인이 저 간판을 단 가게 주인들이 먹고 사는 일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 모르겠지만, 시 한 구절 적은 자신들의 간판이 파란 하늘 아래 걸리던 때, 그 간판에 적힌 시를 바라보며 '아, 좋네.' 한 번 하면 그 또한 좋겠다 싶다.


이렇게 시가 있는 옥천을 만들도록 추동한 정지용 시인의 생가는 작고 작은 초가집이다. 담 너머로 벌판이 보이고, 울타리만 밀고 나서면 첨벙대고 놀 만한 개울이 시원했을 곳이다. 사실 작은 집 어디를 더 살펴 볼만하지도 않지만, 그 집 옆의 열린 문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가면 바로 옆 건물이 정지용 박물관이다.  







 

 

 

 

정지용 박물관  












정지용 박물관 내부. 아무래도 더 이상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
정지용 시인의 생존 당시, 정지용 개인의 생애와 당시 문학의 흐름, 그리고 시대적 상황을 한 눈에 정리한 것이 인상적. 아, 중 3 아이들을 데려온다면 참 좋겠다, 라고 학원강사스러운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정지용 시인에 대한 논문이라든지, 정지용 시집의 러시아 번역판, 그리고 정지용 시인이 활동하던 당시의 문집들, 예를 들어 <문장>지 같이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낡은 책들도 꼼꼼하게 수집해 전시해 놨다.
정말 인상적인 것은, 정지용 시가 끊임없이 흘러가던 영상물인지 파워포인트인지 그랬는데 암튼 어떠한 시어가 궁금해서 해당하는 시어에 손을 대면 시어의 의미가 촤라락 나타나던 설치물이었다.
아, 정말 애들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끊임없이 노래 '향수'가 흘러 나오고, 그 와중에 틈틈히 설명해 주는 한 아저씨 덕에 성악가와 함께 '향수'를 가수가 옥천 출신이라는 것도 알았다. 아, 그랬군. 보람찼다!


4.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그랬다. 노래가 끊임없이 나왔다. 이 날만이 아니었다. 돌아오는 날까지 심심하면 툭툭 이 노래가 흥얼흥얼 나왔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걸어다니며, 금강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른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옥천 구읍에서 피곤과 가방의 무게에 짓눌린 채 버스를 기다려 타고 대청호 어디 즈음으로 예약을 잡아 둔 민박집으로 갔다. 가는 도중, 버스 안에서 사람들에게 물었다. "높은 벌은 어떻게 가야 돼요?" 민박집에서 쉬다가 다음 날이라도 가 볼 작정이었던 곳.
하지만 아무도 '높은 벌'을 몰랐다. 높은 벌, 또는 높은 벼루. 옥천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어딘가 높은 곳에서 강을 내려다 보고 있다는 그 마을 소개를 보고 꼭 가보고 싶었서 찜 해 두었는데, 아무도 몰랐다, 그곳을.
버스 안에서, 나와 같은 안터마을에 가던 아주머니는 나에게 '높은 벌'이 아니고 '넓은 벌'이라고 알려 주시며, 거긴 벌판을 얘기하는 거고 정지용 시인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친절하게 일러 주셨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뭐시기 뭐시기'
아.. 네.. 높은 벼루인데.. 혼자 중얼대다가 계속 시 얘기를 하시려는 아주머니를 응대하기에는 너무도 지쳐 있어서 슬며시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입에서 흥얼흥얼, 또, 노래가 나왔다. 

  


예약을 해 두었지만, 민박집 주인은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에게 집을 맡겨 두고 제주도로 놀러 가셨고, 주인과 핸드폰으로 내내 통화해서 민박집 번호를 갖고 있지 않았던 나는, 나의 지친 몸을 씻고 편하게 쉬게 해 줄 의무가 있는 민박집 주인의 핸드폰이 꺼져 있단 사실을 정지용 박물관에서 담배 한 대 피우며 쉬다가 알았다. 
무작정 대충 어디서 내리면 된다고 전날 통화했던 기억을 떠올려 버스를 타고 안터마을에서 내렸고, 거기서 무작정 민박집 이름을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아 또 무작정 걸었다. 호수가 쉬지 않고 이어졌고, 드문드문 낚시꾼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도착한 민박집. 할머니는 자기 아들에게, 민박집 전화 번호를 나에게 알려 주라고 했는데 내가 연락이 없어서 안 오는 줄 알았다고 했다. 나는 재빨리 그 아들이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사실을 일러 바쳤다. 아이구 저런, 하시던 할머니는 내가 올지 몰랐기 때문에 하지 않았던 청소를, 당장 드러눕고 싶은 나를 세워두고 시작하셨다. 하지만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청소기는 아무 먼지도 삼키지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씻고, 땀에 젖은 옷을 빨고, 이것저것 먹을 것들을 정리하고 나니 그제서야 방의 실체를 현실적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파리가 날아 다니고, 먼지와 머리카락이 굴러 다니고, 꼬질꼬질 냄새가 나는 침대요를 보며 이 성수기에 3만원이면 땡잡은 거지, 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정말, 이건 좀 아닌 것 같아.'라고 구시렁거리며 밥을 해서 먹었다. 내일, 이사를 가, 말아.
커피와 맥주를 샀지만 컵이 없어 밥사발에 커피를 타 마시고 맥주를 부어 마시며, 옛날에 할머니와 이모가 '스뎅 대접'에 커피 타마시던 생각이 나서 피식 웃다가, 맥주가 찰랑거리는 밥공기에 빠져 죽은 파리를 보고는 어처구니가 없어, 맥주 속을 유영하는 파리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깔깔깔 웃어 댔다.


거실 창 밖은 너무나도 깜깜해서 창문에 내 모습만 비쳤고, 가끔 마당의 멍멍이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1. 밝혀둘 게 있다. 옥천의 기차역에 내려 매표소에서 옥천의 지도 및 관광 안내 책자를 받을 수 있겠지만, 자전거도 없고 자가용도 없는 사람에게는 정말 '별로'인 정보들이다. 좋은 곳들, 가볼만한 곳들을 소개해도, 대중교통에 대한 친절한 안내는 찾아볼 수가 없다. 가기 전에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볼 때도 자가용 안내만 되어 있길래, '설마, 책자는 안 그렇겠지....' 했는데 마찬가지였다. 그럼 움직이기 참 힘들지 않겠냐. [본문으로]
  2. 원래 옥천역을 구읍에 만들려고 했는데, 구읍 주민들이 반대해서 지금의 자리에 만들어진 것이고 그곳을 중심으로 중심가가 형성된 것이라는 글을 어디서 보았다. 역이 생기면 더 호황을 누릴 것을 알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그런 호황을 거부했다는 것에 놀랐다. 작복작한 게 싫으셨던 것인지... 암튼 그래서 옥천 구읍은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네로 남아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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