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학교는 '쿨리야(كلية مجتمع العربي, Arab Community College)'라는 곳이다. 요르단 대학교 어학원을 다닐 생각이었지만, 가격도 엄청 비싼데다가 거기가 거기라는 말을 워낙 들어서 학비도 저렴하고 가격대비 효율이 나쁘지 않다는 학교를 고른 거였다. 그러니까 작년에 급하게 알아봐서 결정한 학교였다.

일단, 와보니까, 집에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게 괜찮았고, 한 학기에 7, 80만원 학비도 나쁘지 않았다. 
수업도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다. '처음에는'. 
오자마자 날 기겁하게 만든 여자 선생님 반을 옮겨서 마흐무드라는 남자 선생님 반에 갔다. 이 샘은 옆 모습을 볼 때마다, 살람 아저씨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옆 모습만. 

세 타임 수업. 한 타임 수업은 소요되는 시간이 제각각. 교재를 바탕으로 수업을 한다.


책을 읽는다. 새로운 단어를 읽는다. 선생님은 매번 숙제를 내 준다. 좋다. 본문을 쓸 때도 있고, 연습 문제를 풀어 오는 경우도 있다. 연습 문제는 작문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선생님이 반을 돌아다니면서 모든 아이들의 숙제를 살피고 틀린 거를 고쳐 준다. 숙제 검사를 하다 보면 한 시간을 날릴까 걱정했지만, 숙제 검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하나씩 불러내 받아쓰기를 시킨다. 문장이나 단어를 쓰게 한다. 초반에는 이게 또 도움이 됐다. 문장 중에 꼭 이름이 나오는데, 외운 단어가 아닌 경우에 순전히 선생님의 발음을 듣고 써야 되니 듣기 하는데 도움이 됐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앞에 애들을 불러 놓고 상황극을 만들어서 말하기를 시킬 때도 있다. 이것도 뭐 쪽팔림을 무릅쓰고 하면, 나름 도움이 된다.


  .

자, 이제 뭐가 문제냐 하면

우리 반 아이들이 대략 서른 명 가까이 된다.(막판에는 좀 많이 줄었다.) 내가 코소보 망나니 샤밥(청년), 코소보 애새끼들(학원 강사 습관일 수 있지만, 이건 그냥 이렇게 표현하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는다.)이라고 부르는 녀석들이 있다. 몇 번 눈을 부라리며, 한국말로, 닥쳐 썅, 이라고 얘기한 적도 있는 아주, 시끄러운 녀석들이다. 
얘네들이 다 무슬림(우리 학교 무슬림들이 아주 많다. 거의 대부분.)들이라 꾸란을 공부했고, 따라서 아랍어는, 게다가 여기서 어느 정도 지냈는지 암미야(방언)는 잘 한다. 얘들뿐만 아니라 터키애들도 그렇고. 그리고 한국애들이나 태국애들, 중국애, 말레이시아 애들과 달리 발음 자체가 유사한 게 많아서인지 걔네들이 읽으면 발음이 좋지. 그러니까 얘들은 읽고 쓰는 게 안 되는데 듣고 말하는 게 돼서 선생이 얘네들과 암미야로 막 떠들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 못 알아들으니까. 그리고 얘네들은 읽고 쓰는 것도 일정한 수준이 지나니까 빨리 늘기도 하더라.


자, 이제 다시, 뭐가 문제인가 했냐 하면,

책을 읽는다. 선생이 말한다. 


'가디르(나)! 로갈 아라비! 라 로갈 쿠리!(아랍어! 한국어 말고!)' 




그리고 내 발음을 흉내낸다. 그럼 코소보 애새끼들이 따라서 그 발음을 흉내낸다. 

한국,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학생들은 모두 그 놀림을 겪는다. 처음에는 아하하하 웃으면서, 뭐 상처 받을 일도 아니고, 그냥 재미지군, 하고 넘어간다. 
말레이시아 애들은 '마다(ماذا)'를 '마자'로 발음한다고 오지게 놀림을 받았고, 중국 아줌마는 꼭 말끝마다 '메이드 인 차이나'를 들었어야 했고, 태국 애들은 태국 발음 특유의 딱딱 끊어지는 발음을 애들이 따라하면서 깔깔 거리는 걸 들어야했다. 아, 각 나라 음식에 대해 얘기할 때, 태국 친구가 '똠양꿍'을 말하자 빵 터졌던 걸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엄청 예민해서 못 견디는 게 아니다. 늘 얘기했지 않은가.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번이라고. 하물며 듣기 좋은 말도 아닌데 한 학기 내내 수업 시간마다 사골 우리듯 우려내니 내가 학기 말에 표정이 썩지 않았겠는가. 
진심, 우리 반 한국 친구한테 흥분해서 얘기한 적도 있다 
아랍어를 졸라 잘해서, 쏘아줄 거라고.


"너, 나도 한국에서 무알리마(선생)였는데, 너처럼 한국에서 하면 넌 짤려. 너가 선생이면 발음이 안 좋은 학생이 있으면 어떤 발음이 잘못 됐는지 설명을 하고, 그걸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설명을 해야지 그렇게 쳐 웃기만 해? 로갈 아라비를 하라고 할 게 아니라 설명을 해야지! 너, 코소보 애새끼들하고 쳐 웃기만 하고 장난만 치고 있어? 선생이 그러니까 걔네들도 웃기만 하고 장난만 치지. 우리가 걔네들이나 너희들하고 문화적 토양이 같아? 아니면 언어 구조가 같아? 발음 구조가 같아? 전혀 다른 문화나 언어를 가진 사람들을 그렇게 쳐 웃으면서 놀려? 설명을 하고, 수업을 하라고. 
너, '동', '똥', '통' 발음해 봐! 할 수 있어! 넌 죽었다 깨도 못 해!"


난 처음에 이 선생 마음에 들었다. 얘기할 때 보면 꽉 막히지도 않았고, 기본적인 문법 수업할 때도 괜찮았다. 문제는 그 처음이 한결같지 않았단 거.

애들한테 책을 읽으라고 해 놓고 뒤에 가서 수다 떤다. 당연히 읽는 것을 듣지 않는다. 그러다가 '라 로갈 시니! 로갈 아라비(중국어 말고, 아랍어!)' 뭐 이런 말이나 던지는 것이다.

시험 보기 직전에, 쪽지 시험을 봤다. 

나,정말 환장하는 줄 알았다. 


 

선생이 문장을 읽는다. 애들이 '뭐라구요?' 묻는다. 선생이 또 읽는다. 애들이 또 '뭐라구요?'라고 여기저기서 묻는다. 뭐, 뭐, 뭐, 뭐? 
선생이 그런 애들하고 말장난을 하다가 문장의 단어를 자꾸 바꾼다.

'우마르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작은 마을에 가족들과 삽니다.'
이 짧은 문장을 하면서, 
'우마르는, 고요하고(뭐라구요?), 아름다운, #$@#$한 #$@#$@한 #$@#$@한 마을에 #@$@‪#‎과‬ 삽니다.' 
근까 자꾸 뒤에 붙이는 거야. 근까 이건 뭐냐하면 애들과 수다 떨다가 생각나는대로 붙이는 거야. 애들이 선생 말에 껴들어서 말을 씹어 먹느라 들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애들하고 선생이 수다 떨면서 문장을 부르면 어떤 게 수다 떨 때 나오는 단어이고 받아쓰기 단어인지 헷갈린다는 거다. 
아, 별 거 아닐 수도 있지. 근데 점점 빡치는 거다.

애들을 조용히 시키고 읽으라고!


"딱 세 번 읽는다. 입 다물고 있어라."


나 옛날옛적에 초딩애들 받아쓰기 시킬 때 생각 나서, 더 열받았다.

점점 짜증나고 화가 나는 횟수가 느니 표정도 안 좋아졌겠지. 
선생은 별로 기죽지 않고 씩씩하던 아줌마가 별 반응 없이 앉아만 있으니, 가디르, 잠을 못 잤냐? 아프냐? 라고 물은 적도 있다. 너 때문이야, 꼬마야.

학원을 그만 둘 때 즈음 되면 아이들의 별 거 아닌 장난과 시비와 게으름과 멍청함에 미친듯이 화가 날 때가 있다. 견딜 수 없어지는 지점이 있다. 왜 이렇게 학원 나가기도 애들도 보기 싫지? 그러다가, 아, 정을 떼고 있나 보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 십 몇년 전 엄마네 집에서 나오기 직전에는 일주일 내내 토를 했다. 
까짓 별 것도 아닌 선생이나 수업 때문에 그 때 생각까지 하는 건 아닌데, 정 떼려고 하는가, 그런 생각도 드는 거다. 
암튼 싫다고 생각하니 초반에 즐겁다고 생각했던 것까지 소급돼서 짜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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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쓰고 나니, 오해를 할 수도 있겠는데, 코소보 애들이 또 귀엽기도 하다. 
빵빵 터지면서 수업한 적도 많지. 
아, 걔네들 2단계 가나. 아아아 조금만 입 다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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